Lalala

갑자기 쓰고 싶어서 올리는 '팬질은 안했는데' 가수 잡담

M.HEYURI 2026. 2. 22. 13:30

죽지도 않고 또 왔네

藤岡正明(후지오카 마사아키)

지금이야 한 해에 한 두번 몇달 빡세게 하고 끝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주 방영하던 asayan 중에서도 가장 몰두하고 봤던 카테고리 중 하나였던 '최강 남자 듀오'에서 또래이자 원픽이었고, 뽑히지도 못했지만 솔로로 데뷔를 하고, 뮤비도 청춘 감성 지대로 자극하는 내용에 작곡가는 MISIA의 공전의 히트곡 'EVERYTHING'을 만든 사람이라 지대로 띵곡을 뽑았으니 잘 나갈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고, 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던 기회가 그당시 미쳐있었던 뮤지컬 레미제라블(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등골 브레이커였;;;)이어서 얼타던 기억이.

전에도 글을 썼었던 것 같은데,

2012.08.31 - [Memorial/낡은 상자] - 후지오카군의 얘기를 더해보자꾸나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그당시 일본어학교 선생님이 보여준 영화 '러브레터' 남주말고 저런 사람이 일본 남자애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음.  하지만 현실은 그런 것도 아니었죠. 평소에는 생각을 안해봤는데 어쩌면 일본 유학에 가겠다고 뽐푸를 넣었던게 바로 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문득 아사얀 모음집을 보면서 생각나는게 '원픽이라면서 투표할 생각을 왜 안했지?'

그러게 왜 그랬을까... 그때 휴대폰을 못 만들어서 그런가... 덕심이 들었으면 빌려서라도 했겠죠잉.

https://youtu.be/nYJkfA9OvPc?si=RufwIKWbezmGOn3o

17살에 이랬던 당신은 지금 (먼산)

 

BoA

여기는 워낙 열성팬분들이 많아서 지나가다가 심기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있으면 큰일(ㄷㄷ) 

솔직히 데뷔한 그 당시에는 몰랐음. '아니 맨날 TV를 달고 살면서 2000년에 한국에서 스엠에서 그것도 최연소나이에 데뷔한다고 들썩거렸는데 왜 몰라?'라고 한다면 난 외국 위성 채널만 보고 살았으니 몰랐나 보다라고 대답은 하는데 (먼산) 일본에 건너오면서 하루에 한번 식사를 챙겨주러 오시던 엄마 지인을 보내고 혼자서 훌쩍 거리던 시기에 눈물이 들어간게 그 보아라는 가수였다는 겁니다. 보아님은 일본어로 활동했으니 텔레비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소시 수영이랑 이연희가 나왔던 울트라 유닛 오디션(또 아사얀이냐) 정도였는데, 한국인인 보아님이 마침 리슨투마이하트가 빵 터지고 앨범이 오리콘 1위하던 시절이어서 갑자기 티비에 마구 나오기 시작하더라. 잘은 몰라도 혼자서 무적처럼 양국간을 오가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데, 나는 여기에서 질질짜고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 있다가 동방신기도 빵 터지고 학교에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나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한국인인 나한테 물어봄. 내가 어찌 아냐고오라는 심정으로 알아본게 슴덕으로 가는 길이..였나(먼산) 하교길에 자전거 타면서 한국에 다녀오는 아줌마께서 사주신 보아님 앨범을 mp3에 담아 듣고 다니던 기억도 나네. 생각보다 의지가 꽤 되었던듯. 보통 그정도면 팬루트를 타는데 결국 그러질 못했음. 왜였을까?

(심장을 파스텔로즈하트로 바꿔서 그랬...아님 그때 디제이 플레이 댓 라우더 오네가이 쿨럭)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경하고 호감이에요. 이제는 치열하게 활동한 것에 '오랫동안'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고 SM도 떠나갔다고 하시니 새삼 세월이 느껴지네.

https://youtu.be/LQ82sP3dJWM?si=CDPCihFAYy1I5Vnv

저기... 태클은 아닌데 저때에도 한국어 메뉴로 바꿀 수 있었들텐데;;(나는 그랬음 은행이 달랐나?) 근데 보느님은 입금하시는 위엄, 나는 그저 출금 ㄷㄷㄷ

 

 

종현

잡담으로도 풀기에는 아주 조심스러운 주제이기는 한데,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을 풀어보겠음.

데뷔 당시에는 슴덕 기질이 생겼는지 소시 말고 다른 슴돌도 노래는 챙겨보고 가끔 컨텐츠도 보고 직장인으로 다시 일본에 왔으니 콘서트도 (티켓팅이 성공을 했으면) 흥미차 가보는 정도였다. 샤이니 데뷔 티저를 100번 이상 보고 타남돌 보다는 노래를 열심히 들은 것도 사실이었다. 종현은 단순히 괴물 메보라는 이미지 그 이상의 더 크고 많은 의미가 있었다는 걸 고인이 되어서야 깨닫은 케이스였다. 콘서트 때도 키랑 함께 팬들한테 "큰 댐. 작은 댐" 담당이라고 불릴정도로 눈물이 많다는 것도, 감성이 대단히 섬세하고 큰 가수라는 것도, 늘 밝게 웃고 다정다감한 태도에 능력도 출중하다는 것도 겉핥기로 아는 주제에 그 깊은 속을 얼마나 헤아리며 살았겠는가.

'She is'에 세상의 멋진 쿨함은 다 박아놓은 느낌에 놀랐고, '산하엽'이라는 노래에 충격을 받은 느낌이 아직도 선명해. 코로나 시절에 정말 할 일이 없어서 하던 호캉스에서 미루고 미루던 4명에서 하던 도쿄돔 공연 블디를 틀고 시작부터 그렇게 오열할 줄은 몰랐고, 퇴근길에 종종 들었던 '하루의 끝'을 그냥 들으면 되는데 어떻게 그의 노래를 다루어야 할지 조심스러워 하는 내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한동안 휴지기를 가졌던 유리의 인스타 스토리에 비내리는 사진과 함께 BGM을 'Youth'를 깔고 올라왔을 때, 내가 오해한 것이었다면 유리한테 정말 미안한데, 나는 그 스토리를 보면서 그 청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눈물이 났다. 왜 내가 주제넘게 댐이 된거야.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무덤덤하게 추억하면서 노래를 들을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지금도 나에게는 '종현'이라는 이름 보다는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그런데 'Lock You Down'는 왜 그렇게 잘 듣는거니. 노래가 밝아서 그런가 

 

https://youtube.com/shorts/ZCnQ2pkzFSg?si=ITGOhe6rG2sLyYCv

멤버들도 이젠 이렇게 추억하는데 팬도 아닌 내가 꼴갑이죠(먼산)